셰릴. 알토. 란카.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우정. 마크로스 프론티어(Macross Frontier), 그 중에서도 두번째 극장판이었던 '작별의 날개'는 마크로스 시리즈 특유의 세계관 위에 세 남녀를 배치해 흥미로운 비주얼을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우주로 우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인류와 그에 맞서는 외계 세력 바주라와의 조우와 전쟁. 그리고 그 둘을 이용해 은하 정복을 노리는 세력의 암투까지 맞물리며 작품의 얼개가 갖춰지죠. 그 안에서 인류와 바주라의 화해 모색을 도모하는 건 이번 작품에서도 노래의 힘이었고요.
이것만 봐도 마크로스 프론티어는 기존의 마크로스 시리즈가 지켜온 네러티브를 진화, 발전시켰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이미 초기 마크로스에서 한참이나 멀어진 시점.
인류는 지구를 아니 마크로스를 공격해 왔던 젠트라디와 공존하며 우주를 향하는 이민 선단도 함께 꾸려갈 정도가 된 상황. 그렇게 이상향을 찾아 우주 여행을 하고 있는 인류 앞에 수수께끼의 곤충형 외계 종족 바주라가 나타납니다. 인류와 곤충, 서로의 의사 소통이 단절된 그 상황에서 양 세력은 숙명적인 전쟁을 펼치게 되고 인류는 바주라와 맞서기 위해 신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죠.
헌데 셰릴과 란카라는 두 헤로인의 노래에 바주라가 반응하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과거 젠트라디와 인류가 그랬듯 인간과 바주라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려 하는 거죠.
여기까지는 TV판이나 극장판이나 같은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극장판은 TV판과는 또 다른 전개와 결말을 보여줍니다.
극단적인 차이라면 TV판에서는 대충 뭉게지며 팬들을 편갈랐던 세 주인공 셰릴, 란카, 알토 간의 삼각 관계가 좀 더 명확해지고 TV판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며 안타까움을 줬던 알토의 친구 미셸이 극장판에서는 죽음을 면해 아마도 크랑과 사랑을 이어갔을 거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등 크고 작은 변곡점 등이 추가되어 흡사 평행 우주에서 펼쳐진 두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죠.
삼각 관계의 정리는 제가 지지했던 쪽으로 굳어졌습니다. 감독은 결국 셰릴과 알토를 이어줬는데요. 나이와 맞지 않게 다소 귀여운 소녀로 그려진 란카와 달리 둘 사이의 조합이 비주얼, 스토리텔링 모두 적절하다는 이유에서 전 셰릴과 알토를 지지했었죠. 둘을 이어주긴 했지만 극장판은 안타까운 결말에 이어지는 열린 결말로 여전히 팬심을 흔들며 마무리되더군요.
마크로스 프론티어는 보고 있으면 눈이 즐거워지는 작품입니다. 맘에 드는 색감과 세련된 라인을 기반으로 태어난 미려한 미남, 미녀 주인공에 시리즈를 이어갈수록 화려하게 도장된 신형 발키리와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는 신세대 마크로스까지 내세워 메카닉과 멜로를 아우르는 액션을 멋진 비주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장면의 CG나 작화가 아쉬운 적도 있었지만 이는 주로 TV판에서의 이야기였고 극장판에서는 한층 안정된 작화로 몰입도 있게 작품을 지켜볼 수 있도록 흠잡을 때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죠.
처음 마크로스 프론티어를 본 건 단순히 메카물을 선호하는 취향 때문이었지만 완성도 높은 작화와 화려한 전투씬 등이 TV판을 넘어 극장판까지 챙겨보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된 셈인데요. 마크로스 프론티어가 눈만 즐거운 작품은 아닙니다.
마크로스 프론티어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으로 칸노 요코의 음악들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애니메이션이나 일본산 게임에서 여전히 절대적인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그녀는 변변한 애니메이션 음악가가 없는 국내에선 더 그 존재가 크게 와닿는 인물인데요.
미지의 외계 생물과 노래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대전제를 가진 마크로스 시리즈는 다른 어떤 작품 못잖게 음악의 존재감이 클 수 밖에 없는데요. 그녀는 노련하게 멋진 곡들을 쑥쑥 뽑아냈더군요.
TV판에서도 그녀가 만든 곡들이 맘에 들었지만 극장판에서 추가된 몇 곡도 맘에 들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란카를 연기한 성우 나카지마 메구미와 셰릴의 노래를 맡은 가수 메이엔 중엔 메이엔의 보컬이 얹혀진 곡을 더 좋아하지만 란카가 부른 虹いろ・クマクマ(무지개색 곰돌이)나 放課後オーバーフロウ(방과 후 범람) 같은 경쾌하고 따스한 멜로디도 두고두고 흥얼거릴 정도로 잘 듣고 있습니다.
현실이라면 이런 노래나 멜로디로 완전히 다른 종족 간에 소통이 가능하다는 건 꿈 같은 얘기지만... 음악은 또 하나의 언어인 만큼 어느 나라 시청자든 칸노 요코의 곡에 자연스레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재밌는 건 마크로스 프론티어의 원작은 '초시공 가무녀 란카'라는 제목의 만화였고 당연히 란카 쪽이 원톱에 가깝지만 마음이 자꾸 셰릴에게 향했다는 겁니다.
불후했던 어린 시절, 바주라와 관계된 질병에 고통을 받으며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이지만 자신의 노래로 은하를 흔들겠다며 특유의 당찬 매력을 선보였던 셰릴. 스스로를 하얗게 불태우는 노래를 선보인 그녀는 성우가 직접 노래까지 부른 란카와는 달리 보컬 파트와 연기가 나뉘어 있었지만 성우 엔도 아야와 가수 메이엔의 조화가 셰릴 노므라는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알토와 셰릴이 연결되면서 마무리된 엔딩이 더 좋았던 거고요.^^ 굳이 언급하자면 란카는 아무리봐도 알토와는 사이좋은 오빠와 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두근두근 러브 로망의 상대로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네요.-_-
크게 전편 '허공가희'와 후편 '작별의 날개'로 나뉘어 이야기를 풀어낸 마크로스 프론티어 극장판. TV판과는 확연히 달라진 이야기, 그렇지만 그래서 더 극적이었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적당히 열린 결말로 극장을 찾은 이들의 상상력에 끝을 맡김 셈이 됐죠.
글쎄요. 또 다른 마크로스가 언제쯤 우리 곁에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마크로스 프론티어 속에 등장한 여러가지 노래는 꽤 오랜동안 제 MP3 애청 리스트로 남을 것 같네요. 이 정도면 꽤 오랜만에 만난 참 흡족했던 극장판이었던 것 같은데요.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작품이지만 그래서 더 시리즈별로 평가가 엇갈렸던 마크로스가 잘 마무리한 프론티어를 넘어 더 매력적인 차기작으로 찾아오길 기대해 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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