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건담 시드(SEED)와 더블오(OO) 이야기를 정리할 무렵 밝혔던 것처럼 전 클래식 건담의 팬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건담을 봤다 싶은게 시드부터고 종종 구작을 복기하듯 보긴했지만 열심히 탐구하며 본건 아니었죠.
로봇이란 소재를 사용해 전쟁의 참상과 인간 내면의 갈등을 그렸던 그만큼 무거웠던 초기의 건담보다는 좀 더 라이트하고 선이 고운 최근의 건담들에 관심을 가졌던 건데요. 이런 시각은 오리지널 건담 시리즈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의 관점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이겠지만 첫단추가 그리 끼워졌으니 어쩔수 없지요.
아무튼 얼마전 2011년작 기동전사 건담 에이지(AGE)까지 챙겨보게 됐는데요. 아. 챙겼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11년작을 이제 봤으니 이 작품도 어쩌다 봤다고 해야할지도... 사실 2011년에 건담 AGE를 보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만 초반의 몇개 에피소드가 당치도 않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같아 크게 실망했거든요.
자신이 만든 건담을 타고 전투를 펼치는 꼬꼬마 주인공의 모습은 흡사 애니메이션 록맨을 보는 것처럼 어딘가 어색했기에 건담 시드를 재밌게 봤던 제게도 일말의 거부감을 갖게 하더라고요. 덕분에 시청층을 확대해 프라모델 판매나 게임화를 노리는 건가라는 생각 정도만 하고 봉인. 그러다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본건데요.
전편을 다 보고나니 일단은 제 판단이 너무 빨랐구나 싶더군요. 꼬꼬마 로봇 액션인줄 알았더니 무려 3대를 오가는 100여년을 관통하는 연대기 형태의 작품일 줄이야. 건담 에이지는 할아버지에서 아들로, 또 손자로 이어지는 3대의 험난한 전쟁기를 다루고 있는데 제가 보면서 실망을 연발했던 도입부는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이었더군요.
이번에도 오리지널 세계관을 만든 건담의 제작진은 지구인과 콜로니인이라는 기본적인 건담의 대결 구도는 유지하면서 이성인의 침략(?)이라는 양념으로 초반을 장식하는데요. 후반으로 가면 이성인의 침략이라는 부분 역시 뿌리깊은 인간들간의 대립이라는 게 밝혀지긴하죠.-_- 그나마 신선하다고(?) 느낀 건 화성인의 존재 정도?
뭐 그 다음의 이야기는 시드 시리즈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같은 인류 안에서도 신체와 정신적인 능력이 앞서는 우성 인류(X라운더)를 골라내어 그들에게만 미래를 허락하겠다는 당치도 않은 꿈을 가진 세력과 그에 맞서는 삼부자의 오랜 전투는 콜로니에서 지구로 또 다시 우주로를 반복하며 확대되어 가고요.
거기에 도구로서 등장할뿐인 듯한 건담. 뭐 이렇게 보면 실망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3대에 걸쳐 맺어지는 인연들과 시대 설정상 구시대의 유물로 등장했다가 진화를 거듭하며 이야기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존재, 건담의 진화를 지켜보는 재미는 나름 괜찮은 편이긴 합니다. 오리지널 건담의 팬이 아니라 진화하는 로봇이라는 설정을 좋아하는 로봇 애니메이션의 팬에게는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1대. 복수에만 열중하는 1대에 거부감을 느끼고 친구와의 대립에 혼란스러워하는 2대. 1대에 의해 훈련됐지만 복수 대신 화해를 꿈꾸는 3대까지의 이야기까지 인물간의 교체와 변화는 있을지언정 전체적인 얼개는 역시 시드가 떠오르는군요. 주인공의 대립 세력이 바라는 이상향의 모습까지도 어딘가 닮은듯한...
다행스럽게도 단순한 꼬꼬마용 애니만은 아니었다는 안도로 작품을 덮을 수 있었지만 건담이 이야기하는 메시지가 이전 작품들에 비해 진전이 없었다는 건 아쉽네요. 건담 시드와 건담 더블오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는데... 다시 시드의 이야기를 3대 이야기로 풀어내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라니.
많은 이들이 건담을 여타의 로봇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보는 이유가 바로 특유의 세계관 안에서 펼쳐지는 진중한 스토리와 묵직한 메시지의 존재 때문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번 작품은 호평보다는 아쉽다는 평가를 더 많이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야 뭐 이냥저냥 보긴 했습니다만...^^
그리고보니 제 스마트폰에 건담 에이지의 음악들은 남았군요. 오프닝하고 엔딩 중 몇곡 맘에 드는 곡이 있어서요. 이렇게라도 기억될 작품? 그냥 다음 건담을 기다려봐야 겠습니다.ㅎㅎ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