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텀 리뷰] 오페라의 유령과는 확연히 다른 팬텀의 존재감으로 말하는 배다른 형제 뮤지컬...
The Phantom of the Opera, Think of me, All I ask of you 같은 곡들을 좋아하신다면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에 기반한 뮤지컬이나 영화로 보셨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쓴 이 주옥같은 곡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큰 사랑을 받으면서 뮤지컬과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내였던 사라 브라이트만이 불렀던 곡들을 좋아하는 편이죠.
흥미로운 건 같은 소설을 뿌리로 둔 또 다른 뮤지컬이 존재한다는 사실인데요. 바로 지금부터 이야기할 팬텀(Musical PHANTOM)이라는 녀석이죠. 한강진역에 이어진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작품인데요. 팬텀이 오페라의 유령하고 같은 배에서 나온 다른 형제인지 모르고 갔다가 익숙한 곡들이 안 나와서 연신 이상하다 했던 건 비밀... 뮤알못의 비애죠.ㅎ
- 이 뒤에는 스포일의 가능성이 있는 얘기들이 나올 수 있으니 아직 뮤지컬 팬텀을 보지 않으셨다면 참고하세요. -
같은 배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둘은 꽤 차이가 납니다. 노래만 다른 게 아니라는 얘기죠. 예컨대 남녀의 사랑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팬텀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주요 설정이 무척이나 다릅니다. 주요 등장인물 중 헤로인인 크리스틴 다에나 팬텀인 에릭은 이름이 같지만, 팬텀에선 필립이란 이름으로 오페라의 유령의 라울과는 꽤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크리스틴, 팬텀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건 비슷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이 팬텀의 비틀린 욕망과 광기에 연민과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던 크리스틴이 라울 쪽에 기울면서 둘 사이의 사랑이 깊어진다는 설정이라면 팬텀은 괴인 에릭의 탄생부터 일생까지를 훑어가며 그가 어떻게 뒤틀리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등 에릭을 작품의 가운데에 놓고 괴물 같은 팬텀이 아니라 감싸주고 싶은 애처로운 팬텀을 보여줍니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건 비슷하지만, 크리스틴이 사랑했던 사람은 필립 쪽이 아니라 에릭 쪽이고 제목 그래도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온전히 팬텀 에릭이 된 거죠. 그저 돈 많은 바람둥이(지만 꽂히면 한 여자만 바라보는) 필립을 존재감 없는 인물로 저만치 밀어내 버리죠.
이렇게 큰 설정이 다르다 보니 작중에 등장하는 사건들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팬텀을 파리 오페라 극장 안에 인도하고 머물게 하는 사람도 그와 팬턴의 관계도 꽤 다르고 표현하고 있고 재능 있는 크리스틴의 발목을 잡는 오페라 가수도 꽤 다릅니다. 아니 그 이전에 크리스틴이 어떻게 오페라를 동경하고 뛰어들게 되는지 등의 설정도 모두 다르죠.(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은 그대로 차용하고 있지만요.) 이런 큰 차이는 흥미롭게 이 작품을 바라보게 하는데요. 팬텀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잔뜩 부여해 전형적인 꽃미남 부잣집 도련님과의 경쟁에 비교 우위(최소한 심적으로는)에 서게 한 건 뭔가 요즘답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설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
외모 하나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저주하면서 모든 세상을 적으로 돌린다는 설정도 처음엔 현대적이지 못한 18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서라고 생각했었지만, 요즘이라도 그렇게 세상에게 손가락질받는다면 희망만 찾기는 어려웠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 그리고 함께 이 작품을 본 일행의 평가 중 하나는 한 불륜남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는 거였는데 팬텀을 보셨다면 이 부분도 공감하시리라 봅니다.
20분간의 인터미션을 포함해서 185분 정도 이어지는 긴 공연이지만, 오랜만에 보는 뮤지컬이라서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본 편인데요. 역시 결정적인 차이는 음악이었습니다. 팬텀 출연진 모두 노래는 참 잘 하셨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든 명곡을 대체하기엔 모리 예스톤의 팬텀의 노래가 살짝 밀리는 느낌이었어요. 이야기 자체는 오페라의 유령보다 더 흥미롭게 풀어낸 것 같지만, 노래가 뒤를 받쳐주지 못해 안타까웠던 뮤지컬이었달까요? 노래의 좋고 싫음이 익숙하냐의 영역일 수 있을 것 같아 더 많이 듣다보면 또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오페라의 유령 쪽에 한점 더 주는 걸로.^^
PS. 팬텀에 받은 필을 오페라의 유령 영화판으로 다시 봤다는 후문... 영화도 재밌더라고요.ㅎ
[관련 링크: Musicalphant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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