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 있는 합창석에 앉아 보신적 있나요?
저도 자리표를 받기 전까지는 합창석이라는 공간이 있는지도 그곳의 자리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었습니다.-_-;; 클래식 공연의 마니아가 아닌 이유도 있지만 뭔가 좀 낯선 이름이긴 하잖아요.
안내를 받고 들어선 자리.
헉, 이곳은 무대를 정면에서 보는 곳이 아닌 후면에서 보는 곳이더군요. 보통 합창단이 자리하는 연단의 뒷편에 2층 높이로 마련된 공간. 아마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경험해 보신 분이라면 그곳의 존재를 아실 겁니다.
아무튼 그곳에 일단 앉았습니다.
확실히 조망하는 각도가 다르더군요. 마치 전방의 관객이 저희를 바라보는 것마냥 이질적인 느낌. 처음이라 낯선 탓이었겠지만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습니다.
지난 번에 소개해 드렸던 한화 클래식이요.
지휘자 헬무트 릴링과 바흐 콜레기움 슈투트가르트, 서울 모테트 합창단, 소프라노 미렐라 하겐, 바리톤 정록기 등 국내외 음악가들이 모여 바흐와 모짜르트의 곡을 연준한다고 말씀드렸던 그 공연에 함께 한거죠.
공연은 나쁘지 않았지만 처음 합창석에 앉고보니 살짝 걱정되긴 했습니다.
소리는 제대로 들릴까하는 걱정이 제일 컸죠. 악기부터 연주자, 합창단까지 모두 등을 돌리고 있으니 무대와 가깝다곤 해도 제대로 소리가 들릴까가 염려됐던 건데요.
그렇게 걱정반 기대반 자리에 앉아있자 어김없이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바흐 콜레기움 슈투트가르트와 서울 모테트 합창단이 입장하더니 성악가들과 지휘자인 헬무트 릴링도 종종 걸음으로 무대에 서시더군요.
시작된 첫곡. 바흐의 익숙한 곡들이 간간히 나오면서 낯선 클래식이 아닌 친숙한 클래식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줬는데요. 예상대로 소리 자체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합창석 자리의 특성이랄까? 아무튼 연주자의 소리가 합창단의 목소리 모두 자연스럽게 전달되지는 않은 것 같았죠.
하지만 무대 자체는 꽤 만족스러웠는데요.
다른 무엇보다 80세를 넘는 노구를 이끌고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헬무트 릴링과 마주하고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보통의 클래식 공연에서는 연주자나 합창단, 성악가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지만 오케스트라를 조율하고 합창단과 시선을 맞추는 지휘자의 정면을 보긴 어렵죠.
생생한 현장의 소리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합창석에서는 이런 부분이 역으로 긍정적인 추억을 형성하더라고요. 헬무트 릴링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원래도 그리 큰 편은 아닌 것 같지만 나이가 있으신 탓에 조금은 더 구부정한 모습의 새하얀 백발을 휘날리는 할아버지. 하지만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그는 수십명의 손과 입을 조율하며 이렇게도 멋진 곡들을 만들어 내시더라고요.
공연의 상당 부분을 그렇게 바흐와 모짜르트의 곡에 귀를 맡기고 헬무트 릴링만 바라본 것 같습니다. 단 한번도 악보를 보는 법없이 악보 하나하나 음표 하나하나 다 머리에 새겨둔 것 같이 매끄럽게 완급을 조절하는 그의 열정은 아직 그보다 반도 못산 제게 적잖은 울림을 던져줬던 것 같습니다.
바흐의 음악 물론 좋습니다만 가장 바흐를 닮은 음악가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는 헬무트 릴링과의 만남은 또 다른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이가 있으시니 우리나라에 언제 다시 오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전해지는 바흐의 고음악을 즐길 수 있어 좋았던 밤이었습니다.
...참, 헬무트 릴링의 모습... 흡사 파파 스머프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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