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무신론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답하진 못하겠지만 종교라는 형태를 가지지 않고 필요할때만 찾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정리하자면 기도를 하는건 아니지만 가끔 이런 것좀 이뤄줬으면 누가 좀 도와줬으면 따위의 영양가 없는 푸념을 늘어놓기 일수인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브루스 올마이티'는 그런 내게 큰 부담없이 다가온 영화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영화도 아니었으며 따분하지도 않은 그렇지만 보고나면 빙그레 미소지어지는 그런 영화.
영화는 지독히 운없는 남자의 하루를 보여준다. 길이 막혀서 회사에는 지각이고 경쟁자가 앵커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등 혹독한 그러나
다분히 개인적인 시련앞에 절망하는 남자. 이내 신에게 대든다. 어쩜 이럴수 있느냐 정도의 푸념이었던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신은 그런 그에게 잠시 자신의 일을 부탁하곤 휴가를 즐기러 가버린다.
영화 도입부는 이러하다. 하루아침에 신의 능력을 가진 이 남자. 토마토 주스를 홍해인양 가르거나 지나가는 여성의 치마를 훌쩍
들어올리는 정도의 귀여운 모션으로 시작된 테스트는 어느새 달을 당겨오고 운석을 떨어뜨리는 지경에 이른다. 신과의 계약 조건은
신경도 안쓰는 양...
'브루스' 역의 짐 캐리는 안면 근육을 씰룩이며 단순히 유머러스한 배우로 우뚝서긴 했지만, 그는 몇몇 전작들에서 자신이 진지한 배역에도 재능이 있음을 보여준바 있었다. 이 영화는 그의 재기발랄함에 많이 기대긴 했지만 어렴풋이 내비치는 그의 진지함도 좋았다. 하루 아침에 신의 힘을 가지게 되어 너무도 개인적인 일에만 활용하는 모습이나 사람의 마음마저 움직여 보려고 애쓰는 안타까운 모습등은 호연이었다.
브루스의 상대역 '그레이스' 역의 제니퍼 애니스톤은 더 이상 남편의 이름 뒤에 서있지 않는다. 브래드 피트보다 이미 돈은 더 많이 벌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그녀가 연기한 그레이스는 브루스가 힘들때 항상 그의 곁에 있어준 여자다. 브루스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는 동안 그와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다소 조강지처(?)식의 이미지로 비쳐지긴 하지만 단순히 순종적이기 보다는 개인의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라고 할까.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건 엉뚱하게도 어제 신문에서 봤던 기사였다. 적십자혈액원에 O형 혈액이 부족하다는 기사였다. 하루하루 댈 양도 부족하며 어쩌면 혈액공급 자체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사. 그냥 쉽게 넘겨버릴 기사는 아니었지만 왠지 영화를 보고 난후 더 마음이 동하는건 이 영화의 메시지
"기적이 되자" 때문이 아닌가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그것이 절대자이던 아님 주변의 누가 됐건 바라기만 좋아한다. 매일밤 치성을 드렸던 우리의 조상들처럼 우리도 빌고 또 빌고 있다. 하지만 우린 스스로 그 기도를 통해 바라는 기적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도외시한다. 내가 줄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내주는 삶이 기적을 이끌어 낼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던 니체. 만약 당신도 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스스로 신의 역활을 맡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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