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외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때는 외식을 해야죠. 앙코르 공연까지 해서 한화클래식 2022을 잘 보고 난 후 집에 가서 저녁을 먹기엔 너무 늦을 것 같은 그런 날이요. 촉촉하게 클래식 선율로 감성을 채웠으니 뭘 먹으면 좋을까 카카오맵을 열고 고민하길 잠시 싸늘한 겨울밤 분위기는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가라고 제 발을 떠밀더군요.
조금 낯선 바로크 음악에 새롭게 매료된 겨울밤, 한화클래식 2022
하루하루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어서 일까요? 생각해보면 듣는 음악들도 빠르게 변해가는 듯한데요. 쉬이 잊히고 또 새로운 걸 만나는 일상 속에서 수백 년 전의 음악을 만난다는
neoearly.net
그래서 예술의전당 맞은편에 있는 30년 전통의 두부 전문점 백년옥에 갈까 하고 걸음을 옮기다가 칼국수라는 글자에 끌리듯 목천집(a.k.a 앵콜칼국수)으로 향했습니다. 간판 위에 백년옥 이름이 걸려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백년옥 산하의 칼국수 가게인데 2019년에 미슐랭 빕 구르망에 이름을 올렸던 곳이더라고요. 빕 구르망(Bib Gourmand)은 미슐랭이 뽑는 가성비 맛집들인데 빕 구르망 기준 가격이 1인 4.5만 원 이하라는 건 이번에 알았네요.
계단을 살짝 내려가듯 들어간 가게는 테이블이 여럿, 안쪽으로 공간이 또 있고 2층도 좌석이 있는 듯하더군요. 메뉴를 살펴보니 최근에 가격이 많이 올랐나 봅니다. 카카오맵에 있는 가격보다 1,500~3,000원 이상 오른 메뉴들이 보이는 걸 보면요. 메뉴는 꽤 다채롭습니다. 식사류와 별미(안주?)류로 나눠 옛날 손칼국수와 수제비, 만둣국과 매생이 칼국수, 호박죽, 야채 두부 비빔밥, 그리고 제가 시킨 팥 칼국수까지 같은 육수의 베리에이션이랄 수 있는 메뉴부터 다른 느낌의 음식. 또 백년옥에서 공수했을(?) 듯한 두부 요리와 만두 등 꽤 다채로웠습니다.
동지에는 못 챙겨먹었지만, 올 겨울 첫 팥칼국수(13,000원)를 주문한 건 최근에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없는 메뉴였기 때문이 컸습니다. 사계절 챙겨 먹는 음식이라기보다는 별미에 가까운 음식이기도 하고 근처에 파는 곳이 많지 않다 보니 이렇게 싸늘한 밤 뜨끈하게 한 그릇 뚝딱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제법 여유가 있던 자리가 한화클래식 2022 공연을 본 손님들로 들어차기 시작하고 테이블에 밑반찬과 설탕통이 깔린 후 팥칼국수가 등장했습니다. 뜨끈하고 담백한 팥 베이스의 국물에 새알심 하나 없이 칼국수만 들어있더군요. 아마 새알심은 동지팥죽에 들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당히 꾸덕한 팥국물에 설탕을 두 스푼 정도 쳐봅니다. 아마 설탕을 넣어 먹는 건 전라도식일 텐데 저는 전북 출신이라 친숙한 설탕 조합이 더 반가웠네요. 기본으로 나온 찬이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팥칼국수와 조합이 나쁘지 않아서 맛나게 먹었네요. 면을 먼저 처리한 후 설탕을 한 스푼 더하고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으면 팥칼국수 끝. 팥죽은 아니지만, 또 동지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뜨끈한 팥칼국수를 해치웠으니 올 겨울 근처 잡귀들도 좀 쫓아내고 건강하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듯하네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소원 한 번 품어보면서 서울을 떠나 다시 집으로 향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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