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KBS에서 방송됐던 미녀들의 수다를 참 좋아라 했었습니다.
회를 거듭해 갈수록 작가들이 끼어들어 이야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전세계 각국에서 온 여성들이 꺼내는 이슈들은 각국의 풍경을 꽤 사실적으로 전했으니까요. 나라와 문화가 다른데서 오는 차이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여성 특유의 화법과 공중파의 편집 방향이 맞물리면서 꽤 부드럽게 이야기가 진행됐고요.
그래서 종편 채널인 JTBC가 외국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남성판 미녀들의 수다가 나오나보다라며 적잖은 기대를 가졌었는데(공교롭게도 방송 시간도 월요일 밤으로 동일)... 이런 기대가 깨지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더군요. 미녀들의 수다가 그랬듯 적잖은 외국인 미남에다 우리와 조금은 다른 그내들의 사고 방식, 성장 환경 등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한국 기준에서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고민하는 것들을 외국인의 시각으로 재조명하겠다는 방송의 취지나 재미도 나쁠 건 없는데 문제는 프로그램을 끌어가는 방식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불쾌한 건 깐족거림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전현무의 줄타기 같은 진행입니다.
이미 첫회를 시작하기 전에 진행한 인터뷰 등에서부터 인종차별의 냄새가 짙은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더니. 본 방송에서도 줄타기 진행이 계속 되더라고요. 특히 다른 패널들보다 친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샘 오취리를 상대적으로 막대하는 것 같은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이는데 노련한 진행자라고 하기엔 헛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전문 진행자가 아니었던 남희석이 차별없는 시선으로 여성 패널들을 대했던 것과는 달리 전현무는 전문 방송인이 아닌 한국 방송 문화가 아직은 낯설 일반 외국인 패널들을 상대로도 그저 재미만 추구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볍게 혹은 무례하게 대하는 것 같아 조금 보기 그렇더라고요.
물론 외국인 패널들도 이 정도도 생각하지 않고 방송에 뛰어든 건 아니겠지만 노련한 진행자라면 정상과 비정상 양쪽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프로그램 내 토론을 좀 더 안정적으로 끌어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그나마 성시경과 유세윤이 전현무가 흐려놓은 분위기는 물론 양 진영에서 일어나는 토론이 격해질때마다 적절한 중재에 나서며 프로그램을 웃고 끝나는 예능의 가벼움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전현무가 자꾸 흠집을 내서야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얼마나 갈수 있을런지.
아직은 4회 정도만 방송된 상황이라서 사실 섣부르게 패널들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단순히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들이 아니라 다른 프로필과 인생을 살아온 나이가 다른 남성들이 11개 나라의 대표라는 자격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게 익숙하지들 않을테니까요. 애초에 각국 대표라는 무게감 따위는 없는 예능이긴 하나 자신을 중심으로 자기 나라의 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조금씩 풀어놓을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긴 하더군요.
문제는 결정적인 우리말 실력의 차이인지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거나 오해사지 않도록 잘 필터링하는 능력이 아직 모호한 패널들이 많다는 건데요. 예를 들어 한국 생활에 잔뼈가 굵은 터키 출신의 에네스는 가부장의 끝을 달리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지만 마음 속의 이야기를 충실히 꺼내면서 호응을 얻고 있으나 가끔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토론을 흐리거나 아직 우리말 표현이 서툰 외국인 패널들은 종종 폭탄 수준의 대사를 거침없이 던져 분란을 일으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는 건데요(편집의 영향으로 그렇게 비치는 것도 있겠지만...)
이런 분위기는 토론에도 그대로 이어져 공격적인 몇몇이 이야기를 주도하는데 반해 또 다른 몇몇은 편집이 되는 건지 눈치를 보는 건지 주눅이라도 든 것 마냥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해 활발한 토론으로 이어지진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런 부분은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개선될 문제이긴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애초에 비정상회담에서 미녀들의 수다를 기대한 게 잘못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남녀의 성별 차이와 공중파와 케이블 종편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을 사이에 둔 두 프로그램을 유사점 혹은 차이점 찾기로만 바라본 게 문제였다는 얘기죠. 하지만 두 프로그램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공감을 이끄는 식으로 작동하는 기본 프로세스가 유사했기에 더 기대했던 것 같은데 아직은 조심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신선한 시도로 흥미를 끌고 있는 JTBC 예능의 또 다른 대표 주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그나마 다행인 건 3, 4회차는 1, 2회차보다 나아져서 점점 볼만해지고 있다는 것~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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