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플랜 B가 제작하고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에 의해 태어난 미국 영화 미나리(MINARI). 한국계 배우들의 출연과 한국어 대사의 향연으로 일찍부터 화제였던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에서 미국 영화임에도 한국어 대사가 많다는 이유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더니 아카데미에서는 6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음악상)에 오르며 수상에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데요. 태생이 미국 영화라는데도 마음이 쓰이는 건 역시 한국 이민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죠?
영화를 보니 일단 잔잔하고 좋더군요.@_@/ 어쩌면 그래서 영화를 다 본 후에 심심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의 충돌이 있을지언정 격렬한 충돌보다는 어딘지 지극히 현실적인 느낌의 이야기들. 반면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가 미국에서 호평을 끌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종이나 국가를 뛰어넘어 이민자, 아니 비단 이민자가 아니라도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느낄 수 있는 삶의 공통적인 정서를 잘 건드리고 있는 영화였으니까요.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줄거리부터...
- 스포일의 가능성이 있는 얘기들이 나올 수 있으니 아직 미나리를 보지 않으셨다면 주의하세요. -
아칸소로 이사온 한국인 가족. 미국으로의 이민와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면서 두 아이 앤과 데이빗을 키우는 아빠 제이콥과 엄마 모니카. 하지만, 아칸소로 이사온 후 자신만의 농장을 일궈 성공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하려고 하는 제이콥과 아들의 건강이 걱정인 모니카 사이엔 조금씩 균열이 찾아들고, 어린아이들을 맡기려고 한국에서 오신 할머니 순자와 데이빗은 어딘지 불안불안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대략 이렇고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보시는 걸로 하시죠.
미국에서 먼저 호평을 받았던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연기의 윤여정도 캐릭터와 찰떡인 연기를 보여줬고 살짝 어눌했지만 이만큼 자연스럽게 한국 대사를 하느라 고생했을 스티븐 연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스티븐 연과 대립하는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줬던 한예리의 연기도 좋았고요. 물론 일찍 철든 첫째 딸을 연기한 노엘 케이트 조나 최고의 귀염둥이였던 '브로큰 딩동' 앨런 김의 숨길 수 없는 귀여움을 더한 연기도 좋았습니다. 배우들의 찰떡같은 호연이 조금 심심할 뻔 한 영화 속에 깊이 몰입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다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미나리는 일반적인 드라마가 그렇듯 이 영화도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있고, 그 갈등이 한껏 고조되고 충돌하지만, 뭔가 드라마틱한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이 한국인 가족이 낯선 땅에서 겪는 외로움과 적응의 어려움을 통해 이민자 가족의 현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공감을 끌어내죠. 가족이 하나로 뭉쳐서 위기를 넘기면 좋으련만 가족을 꾸려 함께 이민을 왔다고 해서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해법을 찾는 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반목이 일어나고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해하고 이해받길 원하지만, 때로는 서로에게 생채기만 남기기도 하고 또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품어내고 희망을 발견해 함께 한 발 더 나아가기도 합니다.
115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러닝 타임 안에 미나리는 대체로 급하지 않게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냅니다. 이민을 가서도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는 가족들이 겪는 일과 희망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현실이 주는 고통, 그런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엔 서툰 이민자들의 일상이 풀어져 나오죠. 중간에 투입되는 할머니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나 했지만, 애초에 가족의 문제라는 게 누군가 한 사람의 힘으로 쉽게 풀리던가요. 영화는 할머니의 등장 후에도 좀 더 아픈 사건을 터트리며 가족들을 흔듭니다. 하지만, 영화가 슬프거나 고통스럽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어렵사리 뿌리내렸을 많은 이민자들처럼 어디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를 통해 미국이란 낯선 곳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이들의 희망을 노래하는 영화 미나리. 이민은 가본 적도 없지만, 어딘지 나 아니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는 영화 미나리. 어쩌면 그런 공통의 정서를 자극했다가 결국 포근하게 안아주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인 듯 합니다. 미나리가 그렇듯 척박해 보이는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가 보이는 영화.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뿌리여서 한국인 이민자의 이야기여서 더 흥미로웠지만, 이민자가 아닌 나의 모습을 찾게 했던 영화 미나리였습니다.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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