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심야에 찾아오는 MBC의 시즌제 드라마
옥션하우스에 푹 빠져있다.
본래 이 시간대는 미국 드라마 CSI가 도시를 바꿔가며 장기 집권하던 시간대로 인기를 구가하던 CSI가 토,일요일 양일 편성에서 토요일 연속 방송으로 밀려나면서
(?) 일요일 밤을 차지한 것이 옥션하우스.
경매라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눈길을 끈 옥션하우스가 가진 미덕에 대해 이번 포스트를 통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잘 짜여진 매력적인 캐릭터들...
우선은 옥션하우스의 주인공들을 살펴보자.
옥션하우스의 히로인 차연수. 명랑하고 구김없는 성격의 전형적인 주인공 캐릭터로 위작 화가의 딸이라는 약점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다.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열심히 뛰어다니며 윌옥션에서 자리잡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신입사원. 다른 인물들에 비해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부족한 전문성을 매우는 진실된 눈과 솔직함을 가진 인물이다. 윤소이가 연기하고 차연수는 이전의 윤소이란 배우의 이미지와 썩 잘 들어맞는 색깔을 내주고 있어 큰 부담감 없이 캐릭터에 동화된 느낌이다.
글쎄 히어로일까? 오윤재. 타고난 감각은 있으되 어떤 곳에 정착하거나 규정되는 것을 싫어하는 조금은 보헤미안 같은 인물. 전문성이 부족한 차연수를 잘 이끌어주고 있다. 따뜻한 멘토형은 못 되더라도 커다란 실수를 미연에 막아주는 가이드로서는 훌륭. 시니컬하고 자존심 강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며 전문 분야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쪽도 연기하고 있는 정찬의 캐릭터가 오윤재란 인물에 잘 녹아있는 느낌이다. 뭔가 덜 다듬어진듯 하지만 반짝 거리는 보석같은 캐릭터랄까.
윌옥션을 이끄는 경매사 민서린. 강력한 카리스마로 윌옥션을 이끌고 있는 간판 경매사로 차연수와 처럼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경험과 감각으로 윌옥션의 얼굴이 된 케이스다. 그녀가 없는 윌옥션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윌옥션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짧게 자른 숏커트 스타일을 선보인 김혜리가 맡고 있는 민서린의 캐릭터도 김혜리의 이전 이미지들을 잘 활용한 것 같은데 도회적이고 강하며 언제나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인물로서 민서린을 완성하는데 김혜리의 이미지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주얼리 스페셜리스트 정나경. 차연수의 선배로 전형적인 코스를 밟아온 인물.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더 높은 곳을 향해 열심히 계단을 밟아가는 캐릭터다. 그저 부족함이 없는 듯 해 보이는 모습 외에 온전히 그녀의 캐릭터를 규정하긴 어렵지만 똑부러지는 성격에 포스트 민서린이 엿보인다. 새로운 얼굴 이유정이 맡고 있는 캐릭터로 아직 탤런트 이유정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것이 없지만 드라마가 깊어질수록 뭔가를 기대하게 될 것 같은 연기자다.
와인 스페셜리스트 나도영. 정나경과 함께 차연수의 바로 윗 선배들로 정나경이 다가가기 어려운 타입이라면 이쪽은 좀 더 상대를 편안하게 대해 주는 타입. 적당히 스마트해 보이는 외모와 와인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바 있으나 정나경 만큼이나 아직은 보여줄 부분이 더 많은 캐릭터 같다. 정성운이 연기하고 있는 나도영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려면 연기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아쉽게도 정성운에 대한 것도 그다지 아는 게 없다. 최근에 화제(?)가 됐던 래미안 CF에 주인공이었다는 것 정도 밖엔...
지명도나 스타성이라는 부분에선 여타의 드라마들에 비해서 조금 밀리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옥션하우스가 12회 씩으로 구성된 시즌제 드라마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런 연기자들의 구성이 매 시즌을 끌어가는데 더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캐스팅 비용이나 겹치기 출연에 대한 부담이 적을 듯...;; 그리고 새로운 시즌이 찾아올 때마다 이 다섯 배우들도 더 분명한 캐릭터로 성장하며 각자의 지명도를 높여가리라 기대해본다.
경매라는 새로운 소재와 구성...
옥션하우스는 윌옥션이라는 경매장을 배경으로 경매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섯명의 주요 인물들과 그들을 돕는 조력자들. 그리고 윌옥션에 경매품을 내놓는 사람들과 경매품에 얽힌 사연들이 이야기의 얼개가 되어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저 옥션이라고 하면 쇼핑 사이트를 먼저 떠올리고 경매라고 하면 퀘퀘한(?) 골동품이 거래되거나 가진 자들의 돈자랑 정도로 생각하던 내게 옥션하우스의 소재들은 더 없이 신선했다.
그림의 가치는 그 그림에 갖고 있는 추억의 크기와 같다는 메세지도 그렇고 한번 틀에 갇혀 버리면 그 틀을 깨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던 메세지도 위화감 없이 잘 풀어내고 있었다.
또 매회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구성 덕분에 본의 아니게 한편을 놓치더라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그 와중에 인물들의 성격이나 과거를 엮어내는 장치들도 어색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성은 CSI와 같은 해외 드라마나 여타의 국산 드라마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익숙한 것이긴 하지만 최근의 국산 드라마들이 한회라도 놓치면 영 찜찜하게 만드는 구성으로 중독성을 높여가고 있는 것에 비해 훨씬 깔끔한 느낌이다.
또 매회를 그저 그런 그림들을 거래하는 미술품 경매로만 끌어갔다면 쉽게 식상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주요 인물들의 전문 분야를 폭넓게 구성해서 와인 경매나 보석 경매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옥션하우스의 미덕이라 할 것이다.
사랑보단 일이 먼저... 프로페셔널한 그들...
국산 드라마의 대부분이 주인공들의 직업이란 그저 상대 집안과 결혼을 결정하는 액세서리 정도인지 늘 삼각, 사각 관계 속에서 허덕이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만나는게 일반적인데 반해 옥션하우스는 아직까지는 인물들간의 거리를 적당히 잘 유지하면서 일에 더 집중하는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이는 점이 맘에 든다.
물론 그 와중에도 몇몇 캐릭터들이 유사(?) 러브라인을 그리고 있긴 하지만 그것 조차 빠진다면...-_- 드라마가 너무 삭막할 테고 일과 사랑의 비중으로 보자면 역시 일에, 또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직 일에 서툰 차연수를 돌봐주며 윌옥션을 수면 위에 떠있게 하기위해 쉼없이 발길질을 하고 있는 정나경이나 나도영. 그리고 그 위에서 때로는 서로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각각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윌옥션을 책임지고 있는 민서린과 오윤재와 같은 인물들의 모습이 훈훈한 프로들의 이야기를 잘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드라마에서 사랑이라는 요소를 모두 빼버리자는 것은 아니지만 지겨울 정도로 사랑 놀음에만 매진하는 드라마에게 신물이 난터라 옥션하우스의 담백함에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옥션하우스 최고의 미덕은...
이렇게 잘 짜여진 캐릭터와 경매라는 신선한 소재, 천편일률에서 빗겨난 이야기 구조 등을 옥션하우스의 미덕으로 꼽아봤다. 옥션하우스를 함께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이 이러한 평가에 얼마나 공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옥션하우스에서 꼽는 최고의 미덕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옥션하우스를 오랜만의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생각하며 즐겨보는 이유는 경매품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그 휴머니즘에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옥션하우스에 나온 물건들은 부자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손에서 오랜동안 묻혀있던 물건들이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 흐드러지게 피었던 해바라기와 타국으로 동생을 남기고 떠나야했던 누나를 추억하던 소년이 성장하여 고아원 벽에 그려져있던 해바라기 그림을 찾는다는 3회 '해바라기'나 본처와 제자 사이에서 위작 논란이 불붙어 감정에 들어갔다가 그림에 담긴 진실과 메세지가 밝혀져 잔잔한 감동을 던져준 4회 '비밀과 거짓말' 등 인간사의 다양함을 담으면서도 휴머니티를 잃지 않는 이야기들이 깊은 밤 촉촉해진 감성 위에 한줄기 따스한 기운을 던져줬다.
사실 옥션하우스에는 위작 시비, 검은 거래 등 예술계 전반의 부정적인 부분이나 인간의 탐욕도 그려지고 있으나 결국 그런 모든 것들을 해결하고 감싸안는 휴머니즘 덕분에 불쾌함 없이 매회를 재밌게 보고 되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을 아마 예전에 같은 MBC에서 방송했던 종합병원에서도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과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매달리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이야기.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졌지만 매회 그들의 삶과 죽음을 넘어 희망을 봉합해 낸 것은 인간다움. 즉 작품 전반에서 전해지는 휴머니즘이었다.
소재는 다르고 인물들도 다르지만 그런 의미에서 종합병원이 오버랩되는 옥션하우스.
부디 옥션하우스가 시즌제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지키며 선전해주길 바랄 뿐이다. 아직 옥션하우스가 풀어놓을 이야기들은 산더미처럼 많을 것 같고 기쁜 마음으로 매회를 기다리는 시청자들도 조금씩 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완소 드라마... 옥션하우스에 대한 조금 긴 주절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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