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쳇바퀴 돌 듯 집과 회사를 오가다 보면 종종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은 긴 여행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잘 알고 있고, 반복되는 것 같은 생활 안에서도 변칙적인 일들이 쏟아지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마음 한 구석엔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 훌쩍 떠나는 여행에 대한 로망이 꿈틀거리는데요. 2004년에 데뷔한 페퍼톤스(Peppertones)의 최근 앨범 long way를 듣다 보니 우리가 삶이라는 도화지 위에 그리는 기다란 여정에 대해 또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네요. '긴 여행의 끝'이란 타이틀만 듣곤 여행 노래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할머니와 낡은 로케트(with 이진아)', '새', 'long way' 등 8개의 곡으로 채워놓은 정규 앨범은 어느새 15년이나 함께하고 있는 심재평과 이장원이 페퍼톤스 특유의 감성과 멜로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더군요. 자기 별로 떠나려는 외계인부터 따뜻한 남쪽을 향해 떠나는 새까지 저마다의 여정을 준비하거나 그 여정의 끝에 다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끝내는 절절함을 또 다른 누군가는 꿈을 찾기 위해 말을 타고 내달리면서 열정을 불태우기도 하는. 긴 여정이라는 단어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게 함축되어 있나 보네요. 신났다가 차분해졌다가 몰아갔다가 속삭였다가 변화무쌍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네 삶이 밟힙니다.
며칠 짜리 짧은 여행부터 누군가의 버킷리스트 첫 번째일 세계일주 같은 긴 여행. 그리고 어디로 떠나지 않아도 문득 돌아보게 되는 긴 여정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보면 제가 사랑했던 페퍼톤스의 노래들은 여행에 대한 두근거림을 전해주는 것들이었습니다. 일상의 한 장면을 그려내서 더 좋았던 '공원 여행'도 그렇고 아시아나 항공의 CF 송으로 삽입되면서 듣고 있으면 여권부터 챙겨야 할 것만 같은 감각적인 멜로디의 'Superfantastic', 깜찍한 우주선에 몸을 싣고 우주로 향하고 싶어 지는 'Galaxy Tourist'도 그랬죠.
어쩌면 여행에 대한 로망은 다른 누구보다 많이 품고 있으면서도 뭔가 쳇바퀴 쪽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long way 앨범의 마지막 곡인 'long way'를 들어봅니다. 가사 없이 잔잔하게 시작되는 음악은 조금씩 격정적으로 마음을 밀어냅니다. 그 긴 여정의 끝을 향하는 이들을 응원하기라도 하듯. 음악에 밀려 한 발 또 한 발.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긴 여정에 오르는 이들도 어느 순간 그렇게 한 발 한 발에 집중하게 되겠죠. 그리고 다다른 끝에서는 진짜 끝나는 게 없다는 것에 결국 삶은 현실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에서 적잖은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을 테고요.
...우리네 삶의 궤적은 역시나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닌 긴 여정의 어느 쯤인가 봅니다. 아무리 긴 여행이라도 삶이라는 흐름 안에서는 그저 작은 변주일 뿐. 그러니 저도 노래도 잘 들었겠다 다시 쳇바퀴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새로운 변주에 대해 품었던 로망은 계속 간직한 채로요. 한창 여행과 여정에 대한 생각에 들떴다가 이렇게 금세 차분해지고 말았네요. 물론 페퍼톤스의 음악을 들으면 다 기분이 몽글몽글 필어오를 테지만요.^^
[관련 링크: pepperton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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