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한한 삶을 사는 존재, 필멸자입니다.
세상에 태어났다면 가난한 자건 부유한 자건 건강하건 병약하건 자신만의 타이머에 맞춰서 누구나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게 이치인데요. 그렇게 유한한 삶을 살다보니 그 시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게 평범한 이들의 생각일 수 있지만...
가끔은 영생에 대한 발칙한 상상을 하는 것 역시 유한한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의 특권이 아닐까 싶은데요.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타셈 싱 감독의 셀프/리스(Self/less)는 영생을 꿈꿉니다. 젊은 육신에 노인의 정신을 옮긴다는 꽤 진부한 설정과 함께 말이죠. 물론 그런 뻔한 이야기를 양념없이 요리하면 맛이 없으니 영화는 최첨단 과학기술이라는 MSG를 치기 시작합니다.
...이 뒤에는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나올 수 있으니 영화를 아직 안 보셨다면 주의 부탁 드려요.
자수성가형 부호 데미안.
갑부인 그에게도 어김없이 병마가 찾아오고 그는 시한부로 생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뉴욕의 초고가 아파트에 살지만, 봉사단체를 꾸리고 있는 딸과는 대면대면하기만 하고, 다가가고 싶어도 가치관이 다른 둘을 충돌하기만 하죠. 후회만 남는 삶.
그렇게 병마로 육신뿐 아니라 영혼까지 조금씩 잠식해 가는 사이에 그에게 달콤한 제안이 찾아듭니다.
인공적으로 배양한 젊은 육체에 데미안의 정신을 옮겨 수명을 늘릴뿐 아니라 젊음까지 찾게 해주겠다는 알브라이트의 유혹. 고심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드리기로 한 데미안은 기계에 몸을 맡기도 엄청난 자기력으로 정신을 옮겨준다는 기계에서 눈을 뜬 데미안의 손이 젊어져 있습니다. 기억은 물론 영혼까지 새로운 육체에 무사히 옮겨진거죠.
공식적인 과거는 묻어두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데미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삶을 즐기던 중에 발작처럼 찾아온 환상들.
데미안이 그 환상에 집착하고 정체를 밝히려고 할수록 그의 삶은 예정된 영생과 부유함 가득한 상상과는 거리가 멀어질 뿐입니다.
...영생을 꿈꾸는 인간, 영생의 방법으로 젊은 육체를 탐하는 부자.
여기까지보면 탐욕스런 부호가 욕심 가득한 눈으로 마음에 드는 젊은 육체를 얻고 그 육체의 주인공과 싸워가는 수많았던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나마 셀프/리스는 이런 진부를 반복하진 않습니다. 자신이 얻은 육체가 가족을 꾸리고 있는 퇴역 군인의 것이었다는 것,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 가족이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찾아드는 후회와 반성 끝에 자신에게 약속된 밝은 미래가 아닌 험로를 기꺼이 걷기로 하면서 영화의 방향은 조금 다른 끝을 향해 나아갑니다.
문제는 그렇게 데미안이 옳은 방향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영화가 주는 긴장감이 급속히 희석되어 버린다는 건데요.
자신이 영생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손을 뻗치면서 피해를 입게된 마크의 가족을 보호하고 알브라이트가 펼쳐놓은 흑막의 이면을 파헤치는 과정에 심어둔 반전의 열쇠들조차 힘을 잃어버릴 만큼 올바른 방향 만을 추구하다보니 결말이 뻔히 보이는 그런 영화가 되어버렸더군요.
벤 킹슬리, 라이언 레이놀즈, 매튜 구드, 빅터 가버 등 출연진의 연기도 육체를 교환하기 위해 색다른 첨단기술을 이용한다는 설정까지 흥미로웠는데, 역시 너무 착하기만한 영화에서 매력을 찾기는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진부하다고해도 좋을 육체강탈(?)이라는 소재부터 이런 아쉬운 결말을 향하게 하는 출발점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그렇고 여러분이라면 병든 육체에서 젊고 건강한 육체로 갈아탈 수 있다면 갈아타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영화에서처럼 누구의 몸을 훔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클론이라거나 정말 인큐베이터에서 만들어낸 인간 조직에 가까운 것으로의 이동이라고 한다면 말이죠. 무난한 삶을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겠지만, 육신이 병마에 좀먹고 있다면... 저 역시 데미안에게 알브라이트가 내민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라는 자문에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네요.
댓글 영역